30.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

2025. 2. 16. 14:10뇌 최적화/1년동안 책 100권 읽기

이어령의 마지막 수업,
김지수 지음.
 
언젠가 베스트 셀러 칸에서 보았던 책이다. 이어령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.
그러다 언젠가 주워들었던 적이 있는 이 말을 하신 분이구나 하고 깨달았다.
"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"
 
이 책은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인 이어령 선생님께서 김지수 작가님과 죽음과 삶에 대해 나눈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.
위의 명언처럼 머리를 탁 치는 내용들도 있었으나, 부족한 나의 그릇으로는 도저히 그 깊은 뜻을 모르겠는 내용들도 많았다. 하지만 그 글자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기에 다시 한번 더 읽으며 곱씹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.
 
오래 두고 기억하고 싶거나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문장을 적어보았다.
 

  • 유리잔은 육체, 비어있는 상태 그 자체는 영혼, 채워져있는 액체는 마인드
  • 자기 머리로 생각하면 겁날 게 없다. 간곡히 당부하네만, 그대에 오는 모든 지식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지 말게나.
  • 엄마가 없는 쪽에다 힘을 싣느냐, 있는 쪽에 힘을 싣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져. 해피 엔딩으로 볼 수도 영원한 헤어짐으로 볼 수도 있어. '있다 없다' 까꿍놀이가 결국 문학이고 종교야.
  • 보통 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다음이 있어. 죽음에 대해 쓰는 거지. 벼랑 끝에서 한 발짝 더 갈 수 있다네.
  • 자기 호주머니 속에 덮여 있던 유리그릇 같던 죽음을 발견한 거야. 주머니에 유리그릇 넣고 다녀봐. 깨질 것 같아서 불안하지? 그게 죽음이라네. 코로나는 바로 그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안고 있는 우리 모습을 들춰냈어.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이라네.
  • 오랫동안 인터뷰어로 살아오면서 작게나마 깨달은 게 있다. 질문하는 한, 모든 사람은 배우고 성장한다는 것이다. 질문은 자기 모순적이고 연약한 인간이 이 미스터리한 세계와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이며, 내가 낯선 타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.
  •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하네. 그게 싱킹맨이야. 어린 아이처럼 세상을 보고 어린 아이처럼 사고해야 하네.
  • 생각이 곧 동력이라네.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력 속의 세상이야. 바깥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중력을 받고 살아. 억압과 관습의 압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,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.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 하지.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.
  • '케이스 바이 케이스'에 진실이 있다. 
  • 아흔아홉 마리 양을 버려두고 한 마리 양을 구하러 간다는 예수의 말을 생각해보라고. 왜 그랬을까? 아흔아홉 마리가 한 마리보다 귀한 것 같지? 경중이 다를 것 같지? 아니야. 아흔아홉 마리도 다 한 마리씩이야.
  • 이 컵을 보게. 컵은 컵이고 나는 나지. 서로 타자야. 그런데 이 컵에 손잡이가 생겨봐. 관계가 생기잖아. 손잡이가 뭔가? 잡으라고 있는 거잖아. 손 내미는 거지. 그러면 손잡이는 컵의 것일까? 나의 것일까?
  •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.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.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. 한 커트의 프레임에서 관찰이 이루어지고, 관계가 이루어져. 찍지 못한 것, 버렸던 것들이 나중에 다시 연결돼서 돌아오기도 해.
  • 아흔아홉 마리 양은 제자리에서 풀이나 뜯어 먹었지. 그런데 호기심 많은 한 놈은 늑대가 오나 안 오나 살피고, 저 멀리 낯선 꽃향기도 맡으면서 지 멋대로 놀다가 길 잃은 거잖아. 저 홀로 낯선 세상과 대면하는 놈이야. 탁월한 놈이지. 떼로 몰려다니는 것들, 그 아흔아홉 마리는 제 눈앞의 풀만 뜯었지. 목자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닌 거야. 존재했어?
  • "너 존재했어?" "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?" "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?"
  • 활은 당신의 상처이고, 상처는 당신의  활입니다.
  • 고난은 나, 너, 우리, 인류 모두가 가진 그릇의 넓이와 깊이를 재는 저울이다.
  •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.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만족할 수 밖에 없어. 그게 자족이지. 자족에 이르는 길이 자기다움이야.

 
타인과의 엷은 막을 뚫고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영성, 자신보다 뛰어난 영성을 가진 딸의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. 비현실적이었다.

엄청난 지혜와 지성을 갖춘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들.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이야기도 있었고, 너무나도 어렵고 깊어서 헤아리지 못할 것 같은 뜻들도 있었다.

하지만 죽음이 마냥 비참하고 슬프고 허무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.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기분이더라도, 내가 주체적으로 내 삶을 살고 파뿌리만큼이라도 배려를 베풀며 삶을 산다면 죽음이 마냥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다.